성령 이해 (1)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진 존재다. 이성은 생(生)과 사(死)에 대해 철학적으로 이해하기에 다른
동물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다르다. 이러한 철학적 이해의 동기가 곧 종교성이다. 생(生)이라는
현실적 감각에 있어서는 다른 동물과 별 차이가 없어도, 사(死)에 대한 철학적인 공포증은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인간만의 두려움이다. 즉 죽음에 대한 공포증은 무한 상상력을 유발하고, 그래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 한계 그 이상을 추구하게 하는데 이것이 종교다. 영원히 죽음이 없는
신의 속성에 대한 흠모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신에 대한 무한 상상력을 통해 위로를 받으려 하는
이것이 종교 심리다.
하나님이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에게 생기, 곧 영을 불어넣어 생령(生靈
)이 되게 하셨다. 이때부터 사람은 생령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생령이 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명하셨다. 이를 통해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게 하셨고, 이로써 종교적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으로 죽음을 영원히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영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된 것이 오늘날 기독교회의 신앙이다.
기독교회의 신앙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의심하거나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면,
기독교회의 신앙 자체는 존재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영계(靈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돕는다.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줄 것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들의 문학으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을 만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성경을 초월하여 자기 신념으로써 신앙하려 한다면 이는 분명히 기독교회의 신앙이 아니며, 진리를
감당할 수 있는 믿음도 아니다. 초보 단계부터 장성한 신앙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무식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가 그의 영으로 쓰신 것이라는 확신과 주장이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하여 성경이 주장하는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인자(人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가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에 대한 이해를 능히 할 수 있으니
성경은 영계를 보는 창문이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근거다.
본래 하나님은 아무도 본 자가 없다(요 1:18). 또 볼 수도 없다(요 6:46). 그러나 유일무이하게
그에게서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를 보았고 또 그를 안다. 그리고 그가 알고 계신 아버지와
아버지가 보내신 자신을 앎으로 마침내 영생을 얻게 하는 진리를 알게 하는 이가 곧 성령이심을 이미
증거하셨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 속에 들어온 인자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과 나의 영원한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직접 체험케 하시는 이가 성령이시다. 이
또한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고(요 14:17) 체험으로 알 수 있는 보혜사이시다. 보혜사(保惠
師)란 가장 가까운 의미로는 ‘돕는 이’란 뜻이다. 즉 변호자, 경호자, 봉사자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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