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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알자 (1)

성경에 대한 이해와 읽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 통해 하나님의 마음 읽는 것이 중요”

성경은 기독교인들이 섬기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 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섬겨야 온전한 섬김이 된다. 곧 성경을 잘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잘 안다는 의미이며 성경을 잘 모르거나 희미하게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거나 희미하게 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겨우 1~2년 사용하고 버리는 생활용품을 사면서도 심사숙고하는데 일평생 우리 삶을 드려 섬기는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도 별다른 안타까움조차 없이 성경도 읽지 않는 모순에 빠져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못 읽는다고 한다. 읽는다손 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도 문제요 읽어도 이해를 못하니 그야말로 큰 문제이다. 더 나아가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잘못 아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경 되었더라면 죄가 없을 터이나 본다고 하니 문제라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알면 되겠지만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바로 아는 줄 알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다.

성경을 읽어도 욕심으로 굴절된 시각으로 읽는다면 올바른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른 해석도 할 수가 없다. 그 좋은 예가 유대인들이 침례 요한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함으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는도다”(행 13:27)

외운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외우면서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한두 절을 요절로 암송한다고 그 말씀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요절만 뽑아서 이기적으로 해석하거나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고 그런 것이 지나치면 이단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로마 가톨릭의 문제는 바로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거나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권위를 약화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오늘날 한국교회가 매우 열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열심은 참된 지식을 좇는 은혜 충만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말씀이 채워지지 않은 영혼의 갈급함에서 온다. 교회 안에 세미나도 많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은 많은데 성경자체를 읽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데서 오는 갈급함이다. 오래 신앙생활 했지만 성경 66권 중 딱 부러지게 알고 설명할 수 있는 성경이 몇 권이나 될까?

기록된 대로 오신 예수(마24:15-28)

하나님은
참된 신이시다(롬3:4)

그는
말씀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신다(민23:19)
그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니
이는 인류를 구원하려 하심이요
또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요3:5)
성령을 보내셔서
인류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오신 것과
그를 믿는 자의 믿음을 보증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며(요14:16-17)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신다(막16:14-18)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세상 끝날까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도우시니(마24:48-51)
성령으로 소망을 갖고 살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세상에 오시니(행1:11)
기록된 대로 성령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되시고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사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은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기념함이다(마2:4-6)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시겠다는 말씀이니(요14:2-3)
성령으로 거룩함으로 주의 날을 준비하자

영광-기쁨-감사의 성탄절(2) 

4.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된 의로우신 분입니다
온 인류는 첫 아담에게 속하여 아담이 범죄할 때 그 안에서 함께 죄인이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므로 세상엔 의인이 없습니다(롬 3:23).

그러기에 남을 위하여 대신 자기 생명을 주어 죄를 사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고전 13:3).

그러나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아담의 혈통을 따라 나지 않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래서 첫 아담의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의인으로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고전 15:45).

성령은 예수께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후에도 그분의 의를 계속 증거해 주십니다.

5.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요 1:14). 죄로 인해 두려워하는 자들의 죄를 담당하셨고, 병든 자들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벧전 2:24).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가난케 되셨습니다(고후 8:9).

또한 예수는 우리의 연약함을 온전케 하셨습니다(마 8:17).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 영원히 멸망할 인류에게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주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성탄절은 2천년 전 말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심령에 임하셔서 생명을 주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주 예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6. 성탄절에 우리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 사람으로 오신 예수를 본받아 겸손한 성도가 됩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참 마음과 참 뜻으로 예수를 나와 내 가정에 영접합시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눅 19:5)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한 천사처럼, 이웃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합시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우리 영혼에 구세주로 오신 주님을 최고의 감사로 맞이합시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작은 일에 충성하자(마25:14-30)

하나님은
살아계신 주인이시다(말1:6)

그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되
지극히 작은 것과 큰 것을 창조하셨다(창1:1)
그가 인간에게 은혜로 주신 믿음은
예수 이름과 그 영광이다(요3:16)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로 임하셨다가
하늘에서 가장 큰 자가 되셨으니(히3:1-6)
곧 영광을 받으심이다(요1:14)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눈으로 큰 것만을 보다가
작은 것을 보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마25:40)

예수의 사람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능히
감당할 지혜와 능력이 있다(마25:15)
그러나
작은 일을 놓침으로써 큰 일을 놓치게 되고
작은 일에 충성할 기회를 잃음으로써
큰 일에 충성할 기회를 잃게 된다(눅16:10)

누구든지
주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뜻을 이해해야
그의 약속에 참여할 수가 있다(롬8:17-18)
성령의 지혜가 여기 있으니
성령을 받은 자는 거듭난 자이니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이며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충성할 수 있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 게으른 자 되지 말자
게으른 자에게 닥치는 일을 알고(마25:1-4)
작은 일에도 부지런히 충성하자

영광-기쁨-감사의 성탄절(1) 

1.예수께서는 이땅에 죽으러 오셨다
예수는 이 세상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부활하신 후 영원한 하늘 보좌에 오르셨습니다(막 6:19).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요 1:14).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인자(人子)로 오셔서 세상 권세자 마귀를 심판하시고(요 5:27), 그 사망의 권세 잡은 자 마귀에게 종노릇하던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피 흘려 주셨습니다(히 2:14, 15).
그리고 하늘에 오르신 후 성령을 보내주셔서 믿는 자들을 세상 끝날까지 보전하십니다(요 14:16).

2천년 전 예수의 탄생은 희미하게 보이던 하나님의 뜻이 확연히 드러난 사건입니다(히 1:1, 2). 또한 마귀의 일이 멸하여지고(요일 3:8), 인류에게 은혜와 진리의 빛이 비친 최고의 기쁜 소식입니다(요 1:17).

2.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요 3:16).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셔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요 20:31).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시며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요 1:1). 그러나 세상에 오셔서 섬김을 받으려 아니하시고 도리어 섬기시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마 20:28).

예수는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간구하며(마 26:42)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3. 예수는 예언을 따라 역사 속에 오신 실존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분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 품속에서 독생하신 하나님만이 그분을 보았습니다(요 1:18).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 땅에 보여주신 분입니다.

예수는 2천년 전 구약의 예언을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에 호적(戶籍)하러 가는 길에 태어나셨습니다(눅 2:4~7). 그리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셨으며, 3년의 공생애를 마치고 빌라도 법정에서 역사적인 형을 선고 받아 십자가에 죽으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요 19:41).

이처럼 주님은 역사속에 임하신 실존하는 분입니다(요일 1:1). 이를 증거하는 수많은 역사의 증인들이 있으며, 오늘날 세상 사람들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인정합니다.

보상을 기대하는 신앙(마25:14-30)

하나님은
공평하시다(시97:2)

그는
세상을 공의로 판단하시고(시146:7)
구원받아 영생을 얻을 자와(요3:16-18)
심판받아 영벌 받을 자를 구별하시고
상 받을 자와 벌 받을 자를 구별하신다

아들이 이 권세를 받으셨으니(요5:22-23)
예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다(롬14:9-10)
그러므로
신앙에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고전3:12-15)
곧 영생과 보상에 대한 것이다(히11:6)

상은 이 땅에서도 받으며 또한(엡6:3)
저 하늘에서도 받는다
그러므로
소망이 있는 자가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작품 활동같이 신앙생활을 한다

주님은
소망을 상실한 게으른 자 책망하시고
소망 중에 헌신하는 자를 우대하신다(히11:24-26)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의 영혼도 살리시고 사랑하신다(롬8:11)

소망을 갖자
무슨 일이든 소망을 갖고 일하고
최선을 다하자(벧전1:3-4)

게으름은 저주받은 것이니
자기 일에 힘을 쓰고 안일하지 말자
매사에 성령으로 일하고
주님 앞에 설 때를 생각하자(고전9:25)

은혜를 받은 성도는
주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충성해야 한다(계2:10)

선택해야 하는 생명과 복(신30:15-20)

하나님은
생명이시며
복의 근원이 되신다
그러므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또한 이 생명은 영원하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셨으니(요10:17)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엡1:20)
오늘날 우리에게 생명의 주가 되셨다(행3:15)

예수를 믿는 믿음의 결국은 영생이다(벧전1:8-9)
이는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약속이요
성령께서 친히 증거하신다(행2:38-40)
그러므로
신앙은 믿고 열심히 사모하는 것이요
성령충만함도
생명의 주를 열심히 사모하는 것이다(요20:22)

성령은
우리를 예수 안에 있게 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16:13)
세상에는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살기 위해 생명을 택하라 하신다(신30:15)
육체의 생명은 금세에 유익하나
영혼의 생명은 금세와 내세에 유익하다(딤전4:8)
신앙은 영생을 사모함이니(요3:16)
각각 자기 집에 영원한 생명이 있게 하고
이를 위하여 복음을 순종함으로(벧전1:22-25)
자기 집의 신앙을 튼튼하게 하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택한 자는
오직 예수와 성령으로 살라(요3:8)

회개(2)

*회개를 이루는 요소
첫째 죄를 깨달음(지적 요소)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심각하게 가책을 느끼기까지는 아무도 그 죄를 회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율법을 주시었다. 우리는 이 율법에 비추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인가 깨달을 수 있다.
둘째 죄에 대한 후회(정적 요소)
지은 죄를 비통히 여겨서 후회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하셨다.
셋째 죄로부터의 전향(의지적 요소)
죄에서 떠나려 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자 하는 결심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죄에 대하여 가책을 받고 죄에서 돌이키며 자기를 버리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킨 다음 감사하는 것이다.

*회개한 결과는 어떠한가?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고 하셨다(요일1:9)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지도 않으신다고 하셨다(히8:12)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신다고 하셨다(사44:22)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등 뒤에 던지신다고 하셨다(사38:17)
하나님은 우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신다고 하셨다(사1:18)

이처럼 죄로부터 돌이키는 회개 그리고 예수님께 향하는 믿음은 온전한 개심의 두 단계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여도 만일 우리가 죄로부터 회개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깨끗케 하여 주신다.
더욱이 예수의 죽으심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에 대한 진노하심을 아들과 바꾸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자기의 죄악을 회개와 바꾸면 살 수 있다.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죄의 약속은 지금 이 때에 우리를 위한 약속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한 심령을 구하신다.

믿음으로 감사하자(마8:1-4)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다(사42:8)

그가
아들을 위하여(히1:2)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인하여 기뻐하신다(창1:31)
이는 만물에게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이요(롬1:20)
자기의 자존심이 드러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심은
인류에게 그의 의를 나타내셔서(요16:10)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신다

예수를 통하여 인류에게 나타내신 의는
인류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눅4:18)
모든 저주에서 평안을 주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니
곧 인류와 영원히 함께 하심이다

그가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범사에 감사를 명하셨으니(살전5:18)
이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인류에게 주신 것을 견고케 하심이다(창8:20-21)

성령을 보내심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의를 알게 하시고
또한 아들로 주신 영원한 것을
알게 하시고 소유하게 하시니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요16:13)

하나님은
받은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일을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신다(눅17:15-19)
하나님의 의를 존중하는 자는
의인의 나라에 들어가며(골1:13-14)
의인이 받을 상을 받게 하신다(마25:34)
믿음이 있는 자는 순종으로 감사한다

회개(1)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란 구약성경에서는 ‘뉘우침’ 또는 ‘비통하는 행위’를 뜻하기도 하며 ‘…로부터 돌아섬’ ‘…에서 떠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어떤 전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편 회개란 신약성경에서는 반성 이후의 ‘마음의 변동’을 뜻한다. 즉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의 방법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같이 회개란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거듭남의 외적표현이다.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의지적으로 취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회개란 왜 필요한가?

첫째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둘째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함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셋째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한 사망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눅13: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이처럼 회개는 사람이 영생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는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회개는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 또는 빈부의 차이가 없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다.

*회개를 이루는 요소

첫째 죄를 깨달음(지적 요소)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심각하게 가책을 느끼기까지는 아무도 그 죄를 회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율법을 주시었다. 우리는 이 율법에 비추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인가 깨달을 수 있다.

둘째 죄에 대한 후회(정적 요소)

지은 죄를 비통히 여겨서 후회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하셨다.

적극적인 신앙으로 순종하자(마23:23-24)

하나님은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다(히11:3)
그러므로
만물은 모두 그의 것이다(시24:1)

아담의 타락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땅의 것이 소망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창3:23)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수고하였으나
자기의 것이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람의 소유라는 것은 비록
노력해서 얻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것이다
그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엡1:3)
영원하고 완전한 복을 주려고 하심이다

그러므로
나무가 뿌리를 땅속에 깊이 내리듯이
농사하는 자가 곡식 종자를 남겨두듯이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 중에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창고에 있게 하라 하셨다(말3:10)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를 보호해 주실 약속이다
하나님의 성물을 범한 자는(레27:30-31)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자이니(요12:4-6)
온갖 저주의 원인이 되었다(말3:8-9)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에 대하여
예수께서 바른 순종을 명하셨으니
의와 인과 신이다(마23:23)
십일조와 헌물은 신앙의 표요
하나님과의 약속의 증표이며
복을 받기에 합당한 열쇠이다(삼하6:10-11)
순종의 표로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자

추수감사절(2)

*추수감사절의 역사적 유래

최초로 추수감사절을 정하여 지킨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대륙에 이주한 청교도들이었다. 이들은 1621년 늦가을에 풀리머드 정착지에서의 첫 수확을 감사하였다. 이들은 인디안 원주민을 초대하고 여러가지 음식을 차려놓은 가운데 일주일동안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간을 가졌다.

이 추수감사절기는 다른 지역에서도 경건한 신앙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에 의하여 지켜지게 되었다. 이때 추수감사절은 일반적으로 목요일에 지켜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목요일이 별도의 설교일로써 많은 성도들이 모이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관행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경건한 성도들에 의하여 널리 퍼졌고 많은 호응을 얻게 되어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정착되었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중요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0월에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가의 연례적 행사로 선포하였다. 1941년 미국 의회는 11월 네번째 토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국가 공휴일로 정하였으나. 대부분 국민들은 링컨의 관례를 따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904년 추수감사절을 처음으로 정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후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날짜에는 변동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체적으로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추수감사절이 날짜는 교단과 교회의 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11월의 첫째 주일과 셋째 주일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다.

*추수감사절의 의의와 지키는 방법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신앙고백으로서의 감사절]이다. 우리는 이 절기를 통하여 한 해의 신앙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써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오는 새 해에는 더 큰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다짐하며,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우리에게 임하여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추수감사절을 지킬 때에 신명기 16장 16-17절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에 따라서 첫째,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즉 하나님을 위하여 선택된 특정한 장소에서 드려야 하며, 둘째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며] 즉 이 선택된 예배 장소에 빈 손으로 오지 않는 것이며, 셋째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분량대로 최선을 다하여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게 하자(창4:1-12)

하나님은
살피시고 찾으신다(대하16:9)

그가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더 큰 유익을 주시려고(요6:40)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하나님이
세상에 문화와 신앙을 주셨다
그리고
문화와 신앙의 조화를 살피신다
그러므로
세상에 문화와 신앙이 공존하지만
문화는 신앙을 위하여 있어야 하고(마6:31-33)
신앙은 문화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마6:20)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받았으니(히11:4)
아벨은 죽었으나
그의 핏소리가 하늘에 상달되었다(창4:10)
신앙은
하나님의 감시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신16:13-17)

하나님은 인류에게
문화와 신앙을 선택하도록 하셨고
선택의 자유를 주신 후 감시하신다(창2:16-17)

추수 감사절기는
자신의 신앙을 진단하는 시간으로(신30:16)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분의 지지를 받는다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영원히 그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봉사하고 영혼을 위한 감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핏소리가 되게 하자(눅23:42)

육신과 영혼의 진정한 조화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자

추수감사절(1)

감사는 신앙생활의 중심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는다면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감사란 곧 우리가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대답하는 것이다. 이때 감사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표현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시어 물질 봉헌을 성도의 믿음의 표현으로 보셨다. 또한 성경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유래

추수감사절은 그 유래를 성서의 절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너는 엿새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지니 밭갈 때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출34:21)고 하셨다.

또한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3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신16:16-17)고 하셨다.

*추수감사절의 역사적 유래

최초로 추수감사절을 정하여 지킨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대륙에 이주한 청교도들이었다. 이들은 1621년 늦가을에 풀리머드 정착지에서의 첫 수확을 감사하였다. 이들은 인디안 원주민을 초대하고 여러가지 음식을 차려놓은 가운데 일주일동안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간을 가졌다.

이 추수감사절기는 다른 지역에서도 경건한 신앙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에 의하여 지켜지게 되었다. 이때 추수감사절은 일반적으로 목요일에 지켜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목요일이 별도의 설교일로써 많은 성도들이 모이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관행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경건한 성도들에 의하여 널리 퍼졌고 많은 호응을 얻게 되어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정착되었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중요한 연례 행사가 되었다.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0월에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국가의 연례적 행사로 선포하였다. 1941년 미국 의회는 11월 네번째 토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국가 공휴일로 정하였으나. 대부분 국민들은 링컨의 관례를 따르고 있다.

결국은 영혼에 복을….(눅12:13-21)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창12:1-2)

그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
인류에게 신령한 복을 주려하심이다(엡1:3)
그러나
인류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복을
눈으로 찾으려하고 손으로 만지려 하다가
소중한 기회를 허무하게 버린다(창3:6-7)

진실로 진실로
육신은 복을 소유할 권리가 없다
육신은 바람과 같고 구름과 같아서
잠깐 있다가 순간에 지나간다
그런데
전심을 다해 얻은 재물을
바람 같고 구름 같은 육체에 맡기면
이것이 다 지나간 후에
그 재물을 누가 맡아줄까?
육체를 의지함이 이와 같다(전1:2-7)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영혼에 복이 있는 자는 하나님께 맡겨진 자니
그는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신8:2-3)

죽도록 충성하면 그 영혼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계2:10)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그리하면 모든 수고한 것이
자기 영혼을 위하여 그대로 있을 것이다(마6:20)

하나님께 순종을 보여라(눅12:21)
이것이 자기 영혼을 사랑함이다

육체는 썩어지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하니
썩을 것이 썩지 않을 몸으로 입을 때를 위해
더욱 영혼의 복을 위하여 살자

헌신 예배(1)

예수 믿는 자는 일생을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자이다. 이 땅에서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은 일종의 부업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세상 직업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을 망각하지 않는 자는 헌신예배에 임하는 마음 가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하나님 뜻대로 헌신예배에 성공하고자 한다.

*헌신예배의 준비

-헌신예배의 성패는 준비기간에 어떻게 헌신하는가에 의해 이미 결정된다. 예배 당일은 그동안 헌신한 결과를 보고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기도와 전도와 헌금의 붐을 일으키는 기간이다. 헌신예배의 특별행사로 간증 찬양 성극 등을 준비하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헌신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구하는 특별한 기도 모임을 계속 갖는 것과 영혼을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것과 힘을 다하여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구체적인 행동 목표를 정하고 이를 성취한다. 사실 예수 믿는 자는 특별한 기간에 상관 없이 일평생 열심을 다하여 기도 전도 헌금에 헌신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 열심을 지속하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헌신예배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구체적인 목표(기도시간, 전도대상자수, 헌금액 등)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헌신하여 이를 꼭 달성하는 것이 좋다. 성경에서는 모든 헌신에 대해 [힘에 겹도록]애쓴 신앙인들을 말씀해 주고 있다.

*헌신예배의 특징

-헌신은 우리가 자의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때부터 우리에게 친히 요구하신 [계명]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지음받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위해 구원받고 직분을 받은 것이요 하늘나라에 가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가 헌신할 수 있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받을 영원한 보상과 면류관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육체와 시간과 물질과 지혜와 재능을 다 투자하여 헌신예배를 성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헌신예배는 일평생의 헌신을 집중시킨 축소판이요 그 최고의 절정이다.

내 영혼을 받으소서(행7:54-60)

하나님은
영혼을 찾으신다(창3:9)

그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2:7)

사람의 육체는 시한적 존재로(벧후3:12)
필경은 흙으로 돌아간다(창3:19)
그러나
사람의 영혼의 갈 길은 두 길이니(요5:28-29)
하나는 낙원을 거쳐 부활 후 천국이요(눅23:43)
또 하나는 음부를 거쳐 부활 후 지옥이다(눅16:24)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세상 사는 동안
자신이 선택해야 할 도전을 받는다(요일5:11-12)

세상 사람들은 자기 영혼을
방치하거나 자손들에게 맡긴다(전1:11)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다(눅23:46)

하나님은 성도들의 영혼을 받으시고
영원토록 책임지신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요3:16)
그의 은혜를 얻게 하신 후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하늘 가는 길을 제공하신다
또 거룩한 영혼을 신령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시고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들은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신다(행7:59)
또한 영혼이 하늘에 오른 후에 받을 영광이 있으니
주님과 함께 거룩하고 신령하게 살자

영혼을 주님께 맡긴 기쁨으로 순종하자(롬8:17-18)

헌금(6)

십일조와는 달리 다음의 헌금들은 그 액수나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 또는 [대강 해도 된다]는 뜻이 전혀 아님은 물론이다. 오히려 각자의 믿음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그 사람의 믿음 수준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감사헌금

감사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과 인도와 보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물질을 드려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만 보실 뿐 아니라 물질을 드려 받은 은혜를 시인하는 우리의 행함을 통하여 우리 믿음의 완성을 보시는 것이다.

감사의 내용은 결혼, 출생, 생일, 취업, 진학, 성취, 이사, 개업, 치료, 심방, 침례, 성찬, 전도, 헌신예배 등 헤아릴 수 없으며 이 모든 것 즉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받은 것]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받을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것을 기대하고 계시며(신16:15)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할 일이 더욱 넘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고후4:15).

*절기헌금

절기헌금은 성탄절, 부활절, 맥추절(초실절, 칠칠절, 오순절), 추수감사절(수장절, 초막절, 장막절)같은 절기에 특별히 감사하여 드리는 헌금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기를 주신 의도는 하나님의 일을 기념하고 기억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절기 감사헌금은 그 절기를 당하여 즉흥적으로 당시 형편에 맞게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항상 다음 절기를 미리 미리 기억하고 오랜 기간 충분히 준비하여 온전히 드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각 절기 감사헌금은 일년에 단 한번, 그해 전체를 생각하며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헌금

건축헌금은 대지구입을 포함하여 교회 건축에 필요한 물질을 드리는 것으로 일생 믿음의 최고 절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교회가 비좁고 황무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하며 자기 집만 먼저 늘이고 짓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은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라]고 판정하셨다(학1:2-11). 오직 하늘나라에 영원한 건축의 참 소망이 있는 자만이 이 땅에서도 교회 건축에 신령한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으며 그런 자는 자기 속에 있는 교회 사랑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살아계신 주님(눅24:1-12)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출3:14)

그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으니(요1:14)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고후4:4)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죽음을 경험하셨으며
그의 몸이 무덤에 장사되었으니
이는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나타내려 하심이다(요일5:11-12)

예수께서
사람처럼 죽음을 경험하신 것은 자기를
죽음에서 살리실 분을 의지하여(히5:7-8)
그의 명령을 순종하심이다(빌2:8)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셨으니(행3:14-15)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롬8:11)

비록
예수님이 사람처럼 죽으셨으나
죽은 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고
산 자들과 함께 계신다

그가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심으로(롬14:9)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실 때에
산 자는 주와 함께 영생한다(요5:28-29)

성령은
지금도 살아계신 주를 증거하시고(행5:32)
오직
그의 말씀으로 살도록 감동하신다(요16:13)

살아계신 주님이 함께 하실 산 자는
그를 알고 순종하는 자들이다(요10:27-28)

산 자는 그분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며 기다리는 자이다(요5:24-25)

헌금(5)

십일조와는 달리 다음의 헌금들은 그 액수나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 또는 [대강 해도 된다]는 뜻이 전혀 아님은 물론이다. 오히려 각자의 믿음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그 사람의 믿음 수준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주일헌금(주정헌금)

주일헌금은 주일 예배 때에 드리는 헌금이다. 이것은 세상의 여느 장소에 출입할 때 내는 [입장료]와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죄를 속하시고 생명을 주신 예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내는 생명의 속전(출30:12)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뵈러 나올 수 있게 된 것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특히 초대교회 때부터는 매 주일의 첫 날 곧 주일은 성도들이 모여 연보(주일헌금)를 하고 성찬을 가짐으로써 예수보혈의 공로를 기념하고 구세주 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로 귀하게 생각되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미리 집에서 마음에 정한 대로 연보를 준비해서 드려야 한다. 십일조나 감사헌금 등을 내는 주일이라도 주일연보는 이와 별도로 빠짐없이 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

구약시대에는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일률적으로 반세겔을 내었다. 이는 당시 일반인의 하루 품삯에 상당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생명 주신 주님의 은혜를 최소한 이만큼은 생각해야 되지 않겠는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시96:8)

*월정헌금

주님이 피흘려 세우신 몸된 교회의 살림을 돕기 위하여 그 지체된 성도들이 각자 약정한 금액대로 매월 드리는 헌금이다.이것으로 약정한 우리는 단지 교회에 [출입하는 자]와 구별되어 [교회의 지체]요 [섬기는 주인]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감사헌금

감사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과 인도와 보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물질을 드려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만 보실 뿐 아니라 물질을 드려 받은 은혜를 시인하는 우리의 행함을 통하여 우리 믿음의 완성을 보시는 것이다.

감사의 내용은 결혼, 출생, 생일, 취업, 진학, 성취, 이사, 개업, 치료, 심방, 침례, 성찬, 전도, 헌신예배 등 헤아릴 수 없으며 이 모든 것 즉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받은 것]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받을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것을 기대하고 계시며(신16:15)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할 일이 더욱 넘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고후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