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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나라를 사모하자(마6:25-34)

하나님은
하늘을 지으셨다(창1:1)

그가
아들을 사랑하시고
그를 위하여 하늘을 창조하셨으니
곧 천국이요(히1:2-3)
또 아들은 하늘의 상속자이시다(히1:8)

하늘은
하나님의 품속과 마찬가지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충만하며
아들을 위한 우편 보좌이다(행7:55-56)

우리도 거듭난 그의 자녀로서 영생에 들어가면
그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함께 있을 것이니
이를 위하여 그곳에
우리의 처소를 예배하는 중이시다(요14:1-3)

우리는
이와 같은 영광을 상속받기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으며 수고하고(롬8:17-18)
예수님은 영광의 하늘에서
우리는 땅에서 집을 짓는다(고전3:10-11)
그러므로
그의 나라와 의를 사모함이 합당하다(마6:33)

하나님을 믿는 자는 성령충만하여
이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마19:20-22)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눅17:20-21)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갖자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그의 뜻대로 일하는 믿음을 갖자

세상에 속지 말고(마5:10-12)
오직 진리를 의지하여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 들어가자

우리의 믿음은 이 땅에서도
그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맛보고
영생을 체험하는 삶이어야 한다

헌금(4)

헌금의 종류가 여러가지라는 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못마땅해하며 억지로 끌려가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아직도 헌금이 [손해]요 [의무]요 단순한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각의 헌금이 가지고 있는 영적이고 또 구체적인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갖가지 헌금의 기회가 더 풍성한 [사랑]과 [감사]와 [축복]과 [헌신]의 기회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곧 헌금에 담긴 하나님의 비밀한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사는 자가 된 것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창고를 여는 열쇠이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사람들은 수입에 관해서 나름대로 범위를 정하여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2)

또 1/10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든가 [성의껏]이라는 식의 상징적인 숫자가 아니다. [소나 양의 십분(의)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레27:32)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으로 1/10이상을 내는 사람이 가끔 있다. 아주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으나 십일조는 하나님의 법이므로 법대로 섬기는 것이 바람직하며 나머지는 다른 방법으로 감사하면 될 것이다.

그밖에 꾼 돈에 대하여는 나중에 본인의 수입이 생겼을 때 십일조를 내되, 본인이 원한다면 당시에는 감사헌금을 할 일이며, 부모님이 이미 십일조를 뗀 수입에서 용돈을 받는 자녀들도 신앙을 위하여 십일조를 습관들여야 할 것이다.

거룩하고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경의 약속을 소유하는 믿음의 구체적인 확증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마7:13-14)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그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가 하신 일을 믿으며(요3:16)
하신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마28:20)

곧 세상을 사랑하사
이세상으로부터
하늘 나라로 통하는 문을 주셨으니
이 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10:7-9)
누구든지
이 문을 통하지 않고는
자기 영혼의 생명을 얻을 수 없다(히10:20)

그러므로
모든 예배는
이 문 곧 예수님을 통해서만 상달되며(요4:23-24)
모든 봉사도
이 문이신 예수 안에서 상달되고(마25:40)
믿음의 기도도
이 문을 통하여 상달된다(계8:3-4)

좁은 문이란
세상의 의인들이 버린 문이며(고전1:18)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여
들어가기를 꺼리는 문으로
오직 죄인들만이 들어가는 문이요(마21:31)
회개하는 자가 들어가는 문이다(눅18:13-14)

열린 것 같으나 닫힌 세상 문과
닫힌 것 같으나 열린 문인 좁은 문이 있다(눅24:5)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는
누구도 초월할 수  없는 유일한 문이니(요14:6)
성령이 알게 하시는 이 문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내 영혼을 그분께 맡기자

헌금(3)

헌금의 종류가 여러가지라는 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못마땅해하며 억지로 끌려가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아직도 헌금이 [손해]요 [의무]요 단순한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각의 헌금이 가지고 있는 영적이고 또 구체적인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갖가지 헌금의 기회가 더 풍성한 [사랑]과 [감사]와 [축복]과 [헌신]의 기회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곧 헌금에 담긴 하나님의 비밀한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사는 자가 된 것이다.

*십일조
-십일조는 수입의 1/10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세금]으로써 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말3:8).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았으나 십일조는 그보다 먼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았다(창14:20). 또 예수님께서도 의와 인과 신을 다하여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셨다(마23:23).

-십일조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표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자, 또는 모든 수입의 1/10이 하나님의 것인줄 모르고 살던 자가, 이제 그것을 알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던 옛 생활에서 돌이켜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돌아가는 표이다(말3:7-8).

-십일조는 모든 수입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이다. 십일조는 단순히 전체의 1/10이 아니라 전수입의 뿌리이다. 이 뿌리로부터 9/10가 생겨나서 10/10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뿌리를 굳건히 하나님께 박아놓은 자는 그로부터 모든 수입을 보장받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며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말3:11)

주님의 동역자 (요6:52-59)

하나님은
뜻을 기뻐하신다(요6:38-40)
이는
인류를 향하신 사랑과(요일4:9-10)
그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심이다(눅24:44-49)
이를 위해 보내심을 받으신(마1:21)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희생하지 않고는
인류를 구원하지 않으시며
자신이 승리하지 않으시고는
영광의 보좌에 앉지 않으시고(히1:3)
자신이 심지 않고는
거두지 않으신다(요12: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를 마셔야 그를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살을 먹어야 그의 사랑을 알고
성령을 모셔야 진리를 알 수 있다(요일3:24)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선물이며(요3:14-15)
우리가 받은 은혜는
하나님의 뜻대로 주신 것이다(요일4:14-15)
그러므로
우리가 희생할 때에
주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고
우리가 모든 싸움에서 이겼을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고(마19:28)
신령한 것을 심었을 때에만(눅12:8-9)
영원한 것을 거둘 수 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의 은혜를 보답해야 하니(요14:21)
구원이 먼저 있어야 하나
사랑의 행위는 반드시 나와야 한다(살전2:4)

헌금(2)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무엇인가 빼앗긴다. 무엇인가 손해본다] 는 생각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대표적인 예는 헌금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헌금에 대해 바로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하나님 뜻대로 살 뿐만 아니라 초신자나 불신자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헌금의 뜻

3) 또 헌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시인하며 드리는 것이요(마22:21)

4) 여러가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신16:15-17) 헌금을 통하여 또한 성도들은

5) 주의 사업에 참예하는 것이요(고후8:4-5)

6) 하나님의 관심을 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고후9:7)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헌금은 기독교 신자들의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며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령한 축복의 기회요 하나님에 대한 은밀한 사랑과 기쁨의 원천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헌금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고후9:5)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후9:7)

-온전하고 깨끗하며 가장 귀한 것으로 드려야 한다(말1:7-8)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드려야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믿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히11:4)

-헌신하는 표시로 드려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헌금의 예

-성막을 세울 때의 이스라엘 백성(출36:2-7)

-사렙다의 과부(왕상17:8-16)

-베다니의 마리아(마26:6-13)

-가난한 과부(눅21:1-4)

-초대교회의 성도들(행4:32-33)

-마게도냐 교회(고후8:1-5)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요3:16-2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8)

그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
믿음을 갖게 하심이요
멸망치 않게 하려하심이며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다(요일5:10-12)

이는
인간은 지음 받을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 받을 대상이었다(엡1:3-4)
그러므로
인간이 비록 저주 아래 놓였을지라도(엡2:1-5)
하나님의 사랑의 감시를 받았다(창3:22-23)

율법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선지자도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 그리스도도 그의 사랑이시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멸망치 않는 진리와
영생을 얻는 길이다(요6:53-55)

우리는 베들레헴에서 나신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과(요17:3)
예수 그리스도로 영생을 얻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에게나 고백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의로운 심령을 상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받은 자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데려가심을 믿고
영생의 말씀을 순종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요14:26-28)

헌금(1)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무엇인가 빼앗긴다. 무엇인가 손해본다] 는 생각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대표적인 예는 헌금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헌금에 대해 바로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하나님 뜻대로 살 뿐만 아니라 초신자나 불신자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도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도록 해야 할 것이다.

 

*헌금의 뜻

헌금이란 어떤 기관의 운영비나 유지비 또는 목사의 봉급을 충당하기 위한 회비나 모금이나 조달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헌금은

1) 하나님의 구속의 크신 은혜와 축복과 보호에 대하여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기 신앙의 분량을 고백하는 것이다.

물질이란 원래 갈대아어로 [주인]이란 뜻이다. 하나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것도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마6:24)

그렇다면 물질을 미워하고 천하게 여기고 다 낭비해 버리라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물질은 귀한 보물이요, 따라서 물질이 있는 곳에는 우리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물질을 하나님보다 아래에 두고, 그 귀한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19-21)

2) 즉 헌금은 자기 보물을 하늘에 저축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나라에 대한 진실한 소망을 가진 사람만이 하게 된다. 또 더 많은 보물을 하늘나라에 옮겨놓음으로써 그 소망이 더욱 간절해지고 구체적으로 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실이 괴로우니까 그저 빨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는 식의 막연한 믿음과 구별된다.

3) 또 헌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시인하며 드리는 것이요(마22:21)

4) 여러가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신16:15-17), 헌금을 통하여 또한 성도들은

5) 주의 사업에 참예하는 것이요(고후8:4-5)

6) 하나님의 관심을 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고후9:7)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헌금은 기독교 신자들의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며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령한 축복의 기회요 하나님에 대한 은밀한 사랑과 기쁨의 원천이다.

예수님의 고난의 표적(막16:14-20)

하나님은
생명과 복을 주신다(신30:15-16)

그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으니(요3:16)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육체로 오셨다(요1:14)

이는
세상에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다(마20:28)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류의 질고를 짊어지셨고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셨다(벧전2:24)
이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총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과 같지 아니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요1:17)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은 속죄함은
그가 십자가에서 받은 수난의 표적이요
축사와 신유의 이적도
예수님의 고난의 표적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표로서(벧전3:21)
옛사람이 장사되어야 한다(롬6:4-5)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표로서
하늘로서 거듭난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평생 경험으로 살아야 한다(막16:17-18)

예수님은
영생이시요, 이적이시다
성령으로 그를 믿고 거룩하고 평안하자
평생 주님의 고난의 표적을 가지고 살자(렘29:11)

할렐루야(2)

할렐루야! 이는 우리가 예수를 접하게 되면서 듣는 여러가지 낯선 말 중의 하나이다. 그러다가 예수를 영접하고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다음에는 우리 스스로가 즐겨 말하게 되는 기쁜 말 중의 하나이다.

할렐루야! 이는 언제 들어도 은혜로운 말이요 생명이 되는 말이다. 영원토록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할 신앙고백과도 같은 말이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할렐루야]의 생활이다.

 

*할렐루야 찬양 때 일어서는 이유

헨델이 작곡한 [메시야]라는 작품 중에는 여러 개의 유명한 곡들이 들어있는데 그 중에서도 [할렐루야]라는 곳이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곳이 시작될 때면 모든 사람이 일어난다. 그리고 곡이 다 끝날 때까지 선 채로 듣는다. 그 중에는 영문도 모르고 일어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메시야]는 엄청난 대곡임에도 불구하고 단 24일만에 전곡이 완성되었다(1741년 8월 22일-9월 14일). 이 기간 동안 헨델은 방에만 들어앉아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고 성령의 감동 속에 이것을 작곡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메시야]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할렐루야]는 그 중에 둘째 부분의 마지막 곡이다.

드디어 이 곡이 영국 런던에서 국왕(죠지2세)이 참석한 가운데 정식으로 연주되던 날, 청중들은 이 곡이 쏟아놓는 폭포수와 같은 영감에 압도되어 버렸다. 특히 둘째 부분의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가 연주되자 국왕 죠지 2세는 도저히 앉은 채로 들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할렐루야]가 다 끝날 때까지 선채로 들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국왕이 일어났으므로 다른 모든 청중들도 일어났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그 후부터는 [할렐루야]가 연주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듣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님(마8:14-17)

하나님은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다(갈5:1)

그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류의 고통을 담당시키려 하심이다(사53:4-6)

복음이란

아들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이다(요15:26)

복음은 인류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가 인류에게 자유를 주시려고(말4:2)

전 인류의 짐을 홀로 지신 것이다(요1:29)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인류의 짐을 홀로 담당하실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주시려고 오셨으니

자신의 생명과 이름을 주셨으며

또한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목숨까지도 다 주시려고 오셨다(마20:28)

그가 우리에게서는 죄과를 빼앗으셨고

우리의 불행과 근심을 빼앗으셨고

우리에게서 원수를 제하여 버리셨다(요12:31)

그는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인간에게 행복할 권리를 주셨고(요일5:12)

원수의 권세를 모두 빼앗으셨다

주님이 우리 가정에 임하신 것은

가정의 고통을 친히 담당하시고(마8:14)

생명을 풍성케 하려 하심이다(벧전2:24)

인류의 행복을 빼앗는 마귀와 귀신들에게서

지켜주시려고 성령을 주셨으니(마12:28)

주님을 신뢰하고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세상은 하늘을 알았고 생명을 알았고(요14:6)

구원과 영광을 보게 되었다(요1:14)

무거운 짐을 주께 드리고 자유함을 얻으라(마11:28)

할렐루야(1)

할렐루야! 이는 우리가 예수를 접하게 되면서 듣는 여러가지 낯선 말 중의 하나이다. 그러다가 예수를 영접하고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다음에는 우리 스스로가 즐겨 말하게 되는 기쁜 말 중의 하나이다.

할렐루야! 이는 언제 들어도 은혜로운 말이요 생명이 되는 말이다. 영원토록 우리 입에서 나와야 할 신앙고백과도 같은 말이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할렐루야]의 생활이다.

*피조물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란 히브리말 [이스라엘말]로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는 알렐루야라고 표시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할렐루야의 라틴어 표기이다.

시편 제5권(107편-150편)에서 집중적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구원과 능력, 위엄과 영광을 찬양할 때 할렐루야하는 말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또 계시록 19장 이하에 나타난 것을 보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가 영원히 부를 찬송은 결국 할렐루야하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근본 목적도 또한 할렐루야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즉 모든 피조물이 지음 받은 목적대로 그 직분을 완수함으로써 조물주 하나님, 만유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며 찬양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직분에 충성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고 특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찬송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할렐루야 곧 [하나님을 찬양하라]하신 명령대로 순종해서 사는 삶이다.

더불어 우리 입으로도 할렐루야라는 말을 많이 시인하고 전할수록 유익하다. 믿는 자들이 만날 때마다 인사처럼 반갑게 할렐루야를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수를 증거하시는 성령(행5:29-32)

하나님은
살아계신 신이시다(마16:16)
그가
아들을 보내심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이심이요(롬1:18)
이를 보고 믿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요14:10-11)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보이신 것은
영원한 생명이니 곧 부활이다(요11:25-26)
이 세상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와(히2:!4)
음부의 권세 잡은 자 아래 있다(마16:18)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도
세상에서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다(히2: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고 하늘로 올리셨으니(행2:33)
이로써 영원한 생명을 세상에 보여주셨다
이를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우리의 소망이다(요3:16)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나심을
성령이 증거하시고(요15:26)
성도들은 이 일에 증인들이다(행1:8)
예수의 교회는
성령의 증거를 받아야 하고(요일5:6-12)
성령이 증거하시는 진리를 믿는 자들이니
성령은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오신
보혜사이시다(요14:16-17)
성령으로 믿고 소망하고
성령으로 봉사하고
성령으로 증인이 되자
성도는
예수의 증인들이니
성령 없이는 부활을 증거할 수 없다(요15:27)

하늘 (2)

*하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스스로 계신 자요(출3:14), 하늘을 지으시고 천사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과 사람을 지으신 조물주이시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고 영이시며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가 없으시되 온 우주와 하늘이 감당할 수 없도록 크시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며 또 그곳에 계시지도 않는다.
반면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 천사들은 거할 곳이 있어야 하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하늘을 지으시고 거기에 자기 이름을 두시고 천사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인자)는 바로 이 하늘에 계시매 성경은 그것을 [보좌] 또는 [보좌 우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마5:34) [이제 한 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8:1) 여기서 [우편]이라 함은, 하나님 아버지는 왼쪽에 계시고 아들이신 예수는 오른쪽에 있다는 식의 장소적인 의미가 아니다. 또 아버지는 최고로 높으신 분이고 아들은 그 다음 서열이라는 식의 계급적인 의미도 아니다. 그것은 [심판의 권위] 또는 [절대적인 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하늘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인자)가 계시고 그분을 섬기는 천사들이 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어가 영생할 곳이다.
*하늘은 참 것(실상)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두시려 하늘을 지으셨고 이 땅에는 그것을 위하여 성전을 짓도록 계시하셨다. 즉 이 땅의 성전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아니라 그 이름을 모신 곳이며(대하6:20) 우리가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일들에 대한 비유 모형 예표인 것이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히8:5)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히9:24)
또한 이 땅의 모든 것, 모든 관계는 낡아져 가고 잠깐 있다 없어져 가는 것인데 비하여 하늘의 것, 하늘의 관계는 영원히 새 것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이다(벧후3:13, 히9:15). 즉 구약은 신약에 대하여, 이 땅의 것은 하늘의 것에 대하여 [작은 일](마25:21)이요,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늘나라 영원한 참 것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기에 잠시 잠깐 이 땅에서 그것을 예비하고 달음질하는 자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모든 것의 절정을 영원히 만끽할 자들이다.

처음 사랑(계 2:1-7)

하나님은
불변하신다

그가
태초에 하신 약속을 지키시고
그 약속을 아들로 증거하셨다(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영원불변함이다(요일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도 영원하고
우리에게 믿음으로 주신 행위는 영원하니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요
이웃을 향한 사랑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요일 4:18)이는 자기의 영혼을 참사랑 하는 증거다

율법을 다 지켰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믿음을 다 지켰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고전 13:2)
사랑은 율법과 복음의 강령이다
그러므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면
하나님도 그를 버리신다는 것을 가르치셨다(계 2:4-5)
성령은 이런 약속을 위해 우리 안에 계신다

마귀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게 함이니
속히 돌이켜야 한다

처음 사랑을 찾지 않으면
촛대를 그에게서 옮기신다고 경고하셨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참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외식일 뿐이다

하나님을 참사랑하고
이웃을 참사랑하고
자기의 영혼을 참사랑 함이 믿음이다

하늘(1)

[하늘나라가 분명히 있다!]

우리의 믿음은 이 사실을 알므로 시작한다. 이 사실을 순간 순간 확인함으로 방향을 잃지 않는다. 우리가 돌아갈 하늘의 본향이 있음으로 해서, 그곳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여 올라가 계신 곳,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곳, 그 하늘은 어떠한 곳인가?

*성경은 세 하늘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대하6:18)

성경은 질적으로 다른 세가지 하늘을 말씀하고 있기에 [하늘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첫째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공기가 퍼져 있는 하늘(sky)이요, 둘째는 공중(엡2:2)이라고도 하는 별들이 떠 있는 우주 공간(space)이요, 셋째는 부활하신 예수가 계시고 천사들이 그분을 섬기고 있는 신(영)들의 하늘(heaven)이다.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많은 곳에서 [이 땅]과 구별된 [저 하늘]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때의 하늘은 바로 셋째 하늘(heaven고전12:2)을 가리키는 것이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고전15:48)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이 글에서 하늘이라 함은 이 셋째 하늘을 의미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스스로 계신 자요(출3:14), 하늘을 지으시고 천사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과 사람을 지으신 조물주이시다.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고 영이시며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가 없으시되 온 우주와 하늘이 감당할 수 없도록 크시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며 또 그곳에 계시지도 않는다.

반면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 천사들은 거할 곳이 있어야 하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하늘을 지으시고 거기에 자기 이름을 두시고 천사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인자)는 바로 이 하늘에 계시매 성경은 그것을 [보좌] 또는 [보좌 우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생명의 성령의 법(롬8:1-8)

하나님은
생명의 아버지이시다(시27:1)

그가
아들을 통하여
세상에 영생을 보여주셨으니(요일5:11-12)
아들이 세상의 법으로 죽으셨으나
하늘에서는 성령으로 살리셨으니(롬8:11)
하나님에게
아들을 살리시는 생명의 법이 있으시다(히5:7)

성령은 생명의 법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율법 아래서는 영혼이 죽음을 받으나(롬8:3)
생명의 법인
예수를 알고 믿고 환영하여
성령으로 살면 그가 살리신다(요3:5)

이스라엘을 율법 아래 두셨고
예수의 사람들은
성령의 법 아래 두셨으니(행1:4-5)
성령의 법은 진리이다(요16:13)
그러므로
성령으로 믿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다(유1:20)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셨으니
그의 백성은 죄인이란 믿음을 가졌다
은혜와 진리의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셨으니
예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진리를 증거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믿음을 인치시고 보증하시는 분이시다(고후1:22)

은혜를 받자
그리고 성령을 받자
성령의 법 아래서 진리로 자유를 누리자(요8:31-32)

하나님(2)

신앙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은 어떤 사람도, 어떤 법칙도, 어떤 피조물도 아닌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계시면서 같은 신적 본질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본질로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신앙의 참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면서 인격을 가지셨습니다. 인격은 지, 정, 의의 세가지 것에 의해 특별한 성질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생각을 품으시고, 노하기도 하시며, 사랑하기도 하시며, 또 뜻을 행하시어 자기의 기뻐하시는 대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도덕적 품성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거룩하십니다. 거룩이란 말은 모든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부터의 해방, 즉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며 또한 순결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공정하십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습3:5)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시며 공정하시다는 것은 사람을 언제나 정의로 인도하시는 품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 해서 사랑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말은 즉 하나님께서 모든 사랑의 근원이시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7-21)”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라(고후6:1-10)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신다(약1:17)
그가
언약한 것은
피조물과 하신 것이라도
변치 않으시고(시89:33-37)
영원히 기억하신다(시105:7-8)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이요
예수님은 언약을 성취하시고(요1:14)
이를 증거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다(요16:13)
신자는
하나님의 일을 구경하는 자가 아니요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다(마28:19-20)
하늘에서
하나님이 이같이 일하셨으니
땅에서는
우리 안에 그 일이 영생이 되어야 한다(마6:10)
은혜를 받는 일은
하나님의 영생을 선물로 받음이니(요3:16)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다(마16:26)
그러므로
은혜는 성령으로 받아야 한다(요3:5)
성령으로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뜻과 같이 살아야 한다(창15:13-14)
이것이 믿음이다(고전12:9)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참 성도의 생활이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으면
예수가 주인되셔야 한다(고후13:5)
이것이 영생을 얻는 사람이다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마10:38)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막10:29-30)

하나님(1)

7신앙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은 어떤 사람도, 어떤 법칙도, 어떤 피조물도 아닌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계시면서 같은 신적 본질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본질로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신앙의 참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형체가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곧 하나님께서는 어떤 피조물이 아니라 유일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신4:39)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창21:33)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시102:12)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곧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139: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4)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139:2)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15:3)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18:14)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