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신앙생활 길라잡이 / Christian Life

성령 이해 (2)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알 수 있어도 결코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도 볼 수가 없다.
하물며 하나님의 성령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가 성도 안에 들어오실 때 각양 은사로써
체험을 주시기에 능히 그를 알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의 눈앞에 있으며 사람의 문명에 의하여 그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성령은 살아 있는 성도들의 심령에 들어와
성경을 한 가지로 믿게 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돕는다. 성령의
큰 체험은 성경을 믿게 하는 능력에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존중하고 겸손히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한
권위를 인정할 때 성령의 힘을 알게 되고, 역시 그에게서 나오는 초인적인 능력과 은사와 이적을
체험하게 된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가 말씀으로 온 세계를 지으셨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마침내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에 나타나신 인자를 역사적, 과학적 존재로 확인하여 그를 주(主)라
시인할 수 있어야 구원을 얻는다. 이처럼 우리 눈으로 전혀 볼 수 없는 성령을 전적으로 존중하여
인정하고 그에게 순종해야만 우리가 믿는 진리가 확실히 증거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확신함으로 그가 말씀하는 하나님을 알고, 성령을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받는다(고전 12:3).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성령을 받아서 그의 도움으로 예수를 아는 능력이
그리스도 교회의 능력이다.
성령에 대하여는 성경을 보는 것만큼 체험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권위를 무시하는 분량만큼 신앙도
파괴되고, 성령의 능력도 소멸된다. 비록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의 권위를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능력으로 증거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실존적 능력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곧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인류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그를 이 세상에 보내신 그의 아버지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결과가
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神)으로 성부, 성자, 성신 삼위 중 일위가 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의지와
아들의 의지와 함께 역시 독립적 의지가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한 분으로서 유일하시다(요
17:3). 하나님 아버지는 무소부재하시고 아들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니(빌 2:6-7),
이는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다(히 2:9). 아들은 마침내 부활로써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그러나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오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들 안에만 계신 분이시다.
성령은 자기 뜻대로 역사하시나(고전 12:11)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신다(롬 8:27-28). 성령은 자의로
말씀하지 않으시고(요 16:13)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요 14:26).

성령 이해 (1)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진 존재다. 이성은 생(生)과 사(死)에 대해 철학적으로 이해하기에 다른
동물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다르다. 이러한 철학적 이해의 동기가 곧 종교성이다. 생(生)이라는
현실적 감각에 있어서는 다른 동물과 별 차이가 없어도, 사(死)에 대한 철학적인 공포증은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인간만의 두려움이다. 즉 죽음에 대한 공포증은 무한 상상력을 유발하고, 그래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 한계 그 이상을 추구하게 하는데 이것이 종교다. 영원히 죽음이 없는
신의 속성에 대한 흠모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신에 대한 무한 상상력을 통해 위로를 받으려 하는
이것이 종교 심리다.
하나님이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에게 생기, 곧 영을 불어넣어 생령(生靈
)이 되게 하셨다. 이때부터 사람은 생령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생령이 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명하셨다. 이를 통해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게 하셨고, 이로써 종교적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으로 죽음을 영원히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영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된 것이 오늘날 기독교회의 신앙이다.
기독교회의 신앙은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의심하거나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면,
기독교회의 신앙 자체는 존재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영계(靈界)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돕는다.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줄 것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들의 문학으로 취급할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을 만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성경을 초월하여 자기 신념으로써 신앙하려 한다면 이는 분명히 기독교회의 신앙이 아니며, 진리를
감당할 수 있는 믿음도 아니다. 초보 단계부터 장성한 신앙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무식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가 그의 영으로 쓰신 것이라는 확신과 주장이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하여 성경이 주장하는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인자(人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가 승천하신 후에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에 대한 이해를 능히 할 수 있으니
성경은 영계를 보는 창문이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근거다.
본래 하나님은 아무도 본 자가 없다(요 1:18). 또 볼 수도 없다(요 6:46). 그러나 유일무이하게
그에게서 나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를 보았고 또 그를 안다. 그리고 그가 알고 계신 아버지와
아버지가 보내신 자신을 앎으로 마침내 영생을 얻게 하는 진리를 알게 하는 이가 곧 성령이심을 이미
증거하셨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 속에 들어온 인자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과 나의 영원한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직접 체험케 하시는 이가 성령이시다. 이
또한 사람의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고(요 14:17) 체험으로 알 수 있는 보혜사이시다. 보혜사(保惠
師)란 가장 가까운 의미로는 ‘돕는 이’란 뜻이다. 즉 변호자, 경호자, 봉사자란 뜻이다.

신약 교회 (3)

신약 교회의 특징은 침례, 주일성수, 성찬, 전도, 봉사, 능력에 있다.
첫째, 침례는 첫 사람 아담에게 속하였던 옛 사람을 장사지내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에게
속함으로써 과거에는 우리가 육에 속한 자들이었으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된 것이다. 이는 두 번 다시 육으로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체험이다.
둘째, 주일성수를 통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였으니 주일은 예수가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확신하는 자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한다.
셋째, 성찬은 떡을 떼면서 예수의 몸을 기념하는 것이다. 예수의 몸은 혈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본래
하나님과 함께 계셔 하나님이신 이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로써 인류의 죄와 상관 없으신 이가 세상에 오셨음을 믿고 시인함이요, 잔은 예수의 피를
기념함이니 죄가 없으신 이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음을 믿고
시인함이다. 이렇게 성찬을 매주 시행함으로써 신약 교회의 메시지가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넷째, 이 진리를 받았으면 예수의 남은 고난을 교회가 짊어지고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하는 것이 신약
교회의 의무다. 복음을 받은 자가 복음을 전할 의무를 행치 않으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범하는 죄가 된다(고전 11:23∼29).
다섯째, 이러한 봉사가 주 예수 강림하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신약 교회는 교회를 알리기 위한
다른 이벤트를 찾아 나서면 안된다. 예수가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다른 모든 마을을
찾아가신 것을 신약 교회는 계속하여야 한다(막 1:35∼39).
여섯째, 신약 교회는 처음부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능력은 분리할 수 없는
그의 성품이다.
능력이라는 개념을 따지자면 또 다른 이유에 휘말릴 수도 있지만 성경은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요 14:12), “나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
18) 하신 예수의 당부의 말씀을 신약 교회는 지켜야 한다.
이렇게 교회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하늘에 앉아 계시고 거기서부터 함께 역사하시는 예수의
몸된 신약 교회임을 세상에 분명히 알려야만 한다. 이처럼 신약 교회는 부활하신 이의 생명이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공생애의 연장임을 증명해야 할 사명이 있다.

신약 교회 (2)

구약 교회는 그들의 소망을 율법에서 찾으려 하나 율법은 정죄의 의무만 있고 은혜가 없는 것이
한계이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소망이 전무하다. 구약 교회라 하면 오직 아브라함의 혈육의
자손들에게 한정한 것이나, 신약 교회라 하면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세계 인류에게 알려진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교회인 혈육에 속한 이스라엘의 긍지가 오히려 오만함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만
증폭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신약 교회가 영원한 속죄제로 뿌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얻게 되었고 이로써 그 피를 힘 입어 하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구약 교회의 완악한
연고로 신약 교회에 큰 은혜가 이르렀으니 첫 언약이나 새 언약 모두가 “하나님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농부가 곡식을 심을 때 그 뿌리를 중히 여겨 거름을 주고 가꾸나 그 뿌리를 먹지 않고
거기에서 여문 곡식을 추수하는 것같이 신약 교회가 은혜를 입은 것은 구약 교회와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신약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의도”가 드러났으니 이는 아버지를 위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심이다. 우리는 이를 믿고 시인함으로써 그 믿음이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영원해졌으며 이로써 신약 교회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의 공생애는 신약 교회의 생명과
능력이며 진리와 소망이며 거룩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신약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설계도라면 신약 교회는 그대로 건설된 건물이다. 그러므로 신약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가
일치된 하나님의 메시지가 나타나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일치된 신약 교회의 생애가
나타나야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그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일치한 진리의 세월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건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교회는
예수를 닮아야 하고, 예수는 하나님의 의도요 진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그가 보내주시는 진리와 능력이 신약 교회를
보증하신다. 따라서 신약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지탱되어야 한다.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대한 온전한 이해도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으로만 하나님과 예수의 깊은 사정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성령으로 신약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일치됨을 알고 또한 하늘에 계신 그와
교회가 일치됨을 찾을 때 신약 교회의 본분을 찾게 될 것이다.

신약 교회 (1)

기독 교회의 특징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된 지체며 분명한
인격체라는 것이다. 교회는 원시 종교에 교리라는 기둥을 세워서 세운 종교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 신약 교회는 원시 종교처럼 개인의
체험으로부터 확대 된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세우심을 입고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해 온 세계가 지어졌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후사로서 하늘 보좌와 영광과 권세를
얻으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로써 그의 의도대로 그의
신체 일부가 된 신약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아버지가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의도와 일치된 교회다.
굳이 신약 교회를 설명하는 이유는 신약 교회가 구약 교회와 확연히 구별되는 다른 사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구약 교회는 혈통으로 이루어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준
복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셨다. 이를 ‘여호와’라 하시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나타내셨으니, 그들에게 주신 믿음은 계명, 즉 율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율법을 지켰으나 영원한 본향을 향해 들어가지 못하고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까지 인도되었을 뿐이다. 이는 뒤에 오실 자로 말미암아 여호수아가 더 들어갈 수 없었던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될 복음과 믿음을 주신 것이니, 복음은 임마누엘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독생자시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를 향해 보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며 영생을 얻는다(요 3:16∼18).
이와 같이 구약 교회의 한계를 극복한 신약 교회의 복음과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연결선상에서 신앙을 확립하려고 할 때 모순과 오해의 골이 깊이 패이게 된다. 이로써 진리로
성장해야 할 교회는 자기 정체를 깨닫지 못하고 침체와 표류를 면치 못하고 만다. 구약 교회의 계명은
온갖 시키시는 일을 행해야 살리라 함이요(갈 3:10∼12), 신약 교회에 주신 계명은 저를 믿는 자는
살리라 함이다(요 3:16). 우리는 온 세계에 임한 보편적 믿음에 속한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 분명한 것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이다(요 1:14∼17). 그러므로 구약 교회에 임한 율법의 사명이 다른 것은 아니나 목적은 분명히
달리하고 있다.

피로 사신 교회 (2)

사단은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타락했으므로 이에 합당한 보응을 면치 못할 것이다(겔 28:15).
죄에는 오직 사망이 있을 뿐이며 영원한 멸망만 있을 뿐이다. 이때부터 사단은 죄를 가지는 최초의
피조물이 되었으며 사망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요일 3:8). 음부에 갇힌 사단은 마귀로서 사망 권세를
가진 자가 되었고 범죄하는 자는 누구든지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어 사망의 권세에 눌려 일생동안
두려움 가운데 살게 되었다(히 2:14, 15).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는 마귀에게 속하게 하셨고 의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의에 속한 산
자요 마귀에게 속한 자는 죄에 속한 죽은 자다(롬 6:23).
율법은 이미 죄인된 자들에게 주신 것으로 더욱 죄인됨을 깨닫게 하며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틈을
타고 들어와 더욱 죄에 거하게 한다(롬 7:7). 이와 같이 율법은 죄를 심판하므로 당연히 그 죄 값으로
죽어야 한다. 마귀는 정죄 받고 사망을 안고 오는 이들을 자기 권세 아래 두며 사망의 세력을
확장하고 그들을 지배한다. 율법이 없다면 마귀의 일도 없어지게 되므로 인간은 빨리 율법 아래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율법의 요구는 의를 이루는 것이므로 예수께서는 율법이 요구한 바를 내주시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으므로 마침내 율법의 임무가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는
의롭게 되며 영원히 영생하는 것이다(롬 8:1, 2).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셨다고 하는 것은 첫째
그리스도의 소유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율법은 마귀를 심판하려는 법이 아니라 죄인을 심판하려는
법이다. 마귀가 받을 영원한 형벌은 마귀가 저지른 죄과이며 인간이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은 마귀에게
속아 저지른 인간의 죄과이다. 마귀의 죄과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이며 인간의 죄과에
대하여는 율법이 심판한다.
율법은 의를 요구하며 인류의 죄 값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마귀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를 받아 낸 자는 율법인 것이다. 율법이 인류를
정죄하여 자기 아래 두었던 것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 그럼으로 정식으로 율법으로부터 인류를 빼내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율법이 요구하는 인류의 죄 값을 치루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얻으신
의는 인류를 생명으로 인도하셨다. 말하자면 인류의 죄 값을 요구한 이는 하나님의 법인 율법이요
예수는 율법의 요구에 응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정죄에서 인류를 구해내셨으므로 사망 권세
잡은 자 마귀는 인류를 지배하며 괴롭게 할 아무런 권리도 얻지 못하게 되었다(고전 15:55∼58, 요
8:32).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화평을 누리고 거룩해지며 완전히
자유하게 된다.

피로 사신 교회 (1)

하나님은 교회를 피로 사셨다(행 20:28). 땅과 땅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하나님의 것이다(시 24:1). 인간은 피조물 중 유일하게 영적 존재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만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말씀으로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순간 죄에 팔리므로 죄의 권능 아래서 죄에게 종노릇하게 되었다.
죄값은 사망이므로 인간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위한다. 그리고 영의 능력만이 영생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영은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영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요일 4:5, 6). 이와 같이 인간이
지음 받은 것은 영원 전에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직접 아버지의 작정하신 일을
이루신 분이시며 그는 곧 하나님이시다(요 1:18). 이제 하나님은 만물과 인류를 아들에게 주시고
주님은 자기에게 주신 자들 중, 자기를 믿는 자들과 자기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은 단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
인류는 아직도 세상에 머물고 있고 세상에는 주님의 이름이 전파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인류
모두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세상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작정된 존재로서 영광 돌리는 직분 안에서 그 존재가치를 찾게 하셨다(엡
1:3∼6). 오직 예수 안에 있을 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존재로서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와 같이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원수, 마귀를 심판하실 권세를 받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일을 다
멸하신 다음 하늘에 오르시고 보좌를 주관하시며(요 5:22; 16:11, 요일 3:8 참조) 하늘과 만국을
다스리게 되셨다. 이때부터 천사들로부터 영광 받으시던 것을 하나님의 자녀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게
된 것이다. 인간이 지음 받은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므로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 죽으시는 일도
불사하신 것이다.
사단은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타락했으므로 이에 합당한 보응을 면치 못할 것이다(겔 28:15).
죄에는 오직 사망이 있을 뿐이며 영원한 멸망만 있을 뿐이다. 이때부터 사단은 죄를 가지는 최초의
피조물이 되었으며 사망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요일 3:8). 음부에 갇힌 사단은 마귀로서 사망 권세를
가진 자가 되었고 범죄하는자는 누구든지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어 사망의 권세에 눌려 일생동안
두려움 가운데 살게 되었다(히 2:14, 15).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는 마귀에게 속하게 하셨고 의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의에 속한 산
자요 마귀에게 속한 자는 죄에 속한 죽은 자다(롬 6:23).

부활의소망 (2)

4. 침례로 예수와 연합합니다
예수는 부활하신 후에 비로소 제자들에게 침례를 명하셨습니다(마28:19,막16:16). 그가 부활하시기
전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준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요한과 제자들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받는 것입니다.
침례란 예수 그리스도가 주(主)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물 속에 자신의 몸을 가라앉힘으로써 예수께서 장사되셨던 일에 연합하고, 또 물 위로
올라옴으로써 예수께서 어둠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일에 연합하는 것입니다(롬6:4-11).
그러므로 침례를 받아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며, 그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임을 고백하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5. 성도는 첫째 부활을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성령을 모신 성도들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롬8:11).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예수의 부활이
우리에게 부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께 속한 자들은 그가 강림하실 때에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남은 자들도 신령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됩니다(고전15:51-53). 이를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계20:5). 영이 신령한 몸이 되는 부활은 불신자들도 나중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판 받기
위해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계20:6).
6. 성도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에
연합하고 부활의 약속을 소유합니다. 즉 물 속에 들어갈 때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하고 물 위로
올라올 때 그의 부활에 연합합니다(롬6:3-5).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부활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자들 가운데
성도들은 홀연히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림 받습니다(살전4:13-18).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도 부활의 능력을 힘입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에 그가 베푸신
부활의 능력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으로 항상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부활의 증거가 있는 자들이 바로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성도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세세토록 왕 노릇 합니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다가(계20:4-
6),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성도는 첫째 부활을 소망하고 그것을 푯대로 삼아 이 땅에서 주님의 일에 헌신합니다. 성도에게
부활은 영생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벧전2:9) 이러한 첫째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가지며 어떤 고난이라도 견뎌냅니다(롬8:17).

부활의소망 (1)

1. 바울이 보낸 편지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아,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12 -22절)
2. 부활은 진리입니다
이 세상이 창조된 이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당연한
진리로 여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2천년 전, 그 죽음의 권세가 깨어지고 참 진리인 부활이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신 예수께서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입니다(마28:1-10). 그는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부활은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가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만이 죄
없으신 의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예수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대로
지음받은 사람도 반드시 부활합니다. 다만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요5:29).
3. 성령은 부활을 증거하십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이 살리신 것입니다(행3:15, 엡1:20). 이는 예수 안에 계시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롬8:11). 성령은 예수가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후 예수의 간구에 의해
믿는 자들의 심령에 비로소 임하기 시작했습니다(요14:16-17, 행2:33).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다만 성령의 감동만 있었을 뿐, 아무에게도 성령이 임하신 적이 없었습니다(요7:39). 성령은 믿는
자들의 심령에 오셔서 예수를 증거하십니다(요15:26-27). 예수가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그가 부활하셨음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가 부활하신 체험을 갖는
것입니다.

부활 (3)

성도의 첫째 부활
예수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공중에 재림하시면 먼저 낙원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부활하고(살전 4:15, 16), 그 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이 변화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전15:52, 살전 4:17). 이때부터 천년왕국이 시작된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며,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게 된다(계 20:6).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부활하지만, 각각의 영광은 다르다.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듯이 천국에서 모든 신자와 성도들의 영광도 각각 다르다(고전 15:40, 41).
영생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때 부활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한 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이들의 부활은 영생의 부활이다.
천년왕국 통치가 끝나면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에서 아직 부활하지 못한 신자들과 무저갱에 갇혀
있던 귀신들도 모두 부활하게 된다. 이때 부활하는 신자들은 비록 첫째 부활에는 참예하지 못했어도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영생의 부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 예수를 믿지 않아 귀신으로
활동하다가 그 수한이 차서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 부활하게 되는 귀신들은 영벌에 처해지는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된다(요 5:29). 그래서 이들은 각각 전자는 천국에, 후자는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인간은 영적 존재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므로 흙으로 돌아가면 그 뿐이지만(창 3:19, 전 12:7), 영은
하나님께로서 왔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전 12:7). 다시 말해서 ‘영’은 영원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영원히 살게 된다. 그러나
천국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지옥에서 살 것인지는 육체 가운데 있을 동안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육체를 벗어버리고 나면 다시는 회개의 기회도, 거듭남의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육체의 장막 가운데 살 동안 어떻게 살았든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부활한다.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던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그러나 예수의 공로를 무시하고 예수 이름을
멸시하던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가운데 살게 된다.

부활 (2)

영생의 부활과 신유적 부활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부활하셨다고 말한다(고전
15: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기 전에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들이
있었지만, 성경은 이들에 대해서는 ‘부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요 11장, 요 12:1, 9, 17),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났고(막 5:35-43, 눅 8:49-56),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마 27:52).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되셨도다”(고전
15:20)라고 하여 예수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한다(고전 15:23). 또한 초대교회 때
제자들이 전파하던 복음의 핵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행 1:22; 2:32; 3:15; 4:10;
10:40; 13:30; 17:18). 더 나아가 성경은 지금 현재로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유일한 분이시고, 그 다음 차례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에게 붙을 성도들이라고
강조한다(고전 15:23).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들은 예수와 같은 신령한
몸의 부활이 아니라 썩어질 육체의 기한을 연장받은 것과 같다. 나사로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무덤에서 일어난 많은 성도들도 모두 썩어질 육체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들은 다시 죽지 않는
영원한 부활을 한 것이 아니므로 결국 다시 죽게 된다. 그러니까 이들은 썩어질 육체가 잠깐 살아난
것으로 병든 몸이 치료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들의 부활은 “신유적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의 첫째 부활
모든 신자는 부활을 통해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들어간다.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유일한
분으로, 믿는 자들의 소망이 되신다. 그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이제 믿는 자들이 그 다음 차례를
약속받았다(살전 4:14-17). 고린도전서 15장에도 모든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것을
말씀한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가 있으니, 그리스도가 첫 열매요, 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라고 말씀한다(고전 15:23).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 20장 4-6절에서는 “첫째부활”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성경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만이 첫째 부활에 참예할
수 있다고 하여 매우 엄격한 기준을 말씀한다(계 20:4). 그만큼 순도 높은 신앙생활을 한 자만이 첫째
부활에 참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부활하지 못한 자들은 천 년이 차기까지 부활하지
못한다.

부활 (1)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으로, 이는 기독교가 타 종교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고전 15장, 살전 4:13-17, 계 20:4-6), 그가 재림하실 때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 있으며,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심판을 위해 남은 모든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고전 15:24, 살전 4:13-17).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은 부활한다.
예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
예수와 인간은 육체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부활에도 차이가 있다. 예수는 영(靈)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으로(요 1:14), 그 몸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 전과 부활 후의 몸은
본질적으로 같다.
부활하신 예수는 손에 못자국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옆구리도 창에 찔린 모습 그대로였다(요
20:27). 다만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물질계의 환경에 맞는 시·공간적으로 제한을 받는
연약한 속성을 지닌 몸이셨으나, 부활하신 후에는 굳게 닫힌 문을 통과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요 20:19) 시·공간적으로 제한을 받던 연약한 속성을 벗어버린 초월적인 몸이 되셨다. 예수는
그 몸 그대로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셨다.
그러나 인간의 부활은 다르다. 인간은 본래 유한한 존재인 흙으로 이루어진 육체에 영원한 존재인
영혼을 담고 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 기록된 것처럼,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흙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체는 영계(靈界)인 천국에 합당치 아니할 뿐 아니라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다. 따라서 인간이 천국에 거하기 위해서는 천국의 환경에 맞는 몸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거치는 변화의 과정이 바로 부활이다.
인간의 육체는 흙에서 왔으므로 죽어서 땅에 장사되고, 영혼은 낙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부활을 기다린다. 예수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공중에 재림하실 때 낙원에서 잠자던
성도들과 살아 남아 있는 성도들은 첫째 부활에 참예하게 된다(살전 4:13-17). 그리고 첫째 부활에
참예하지 못한 신자들은 천년왕국이 끝난 후 부활하게 된다(계 20:4-6). 이들 모든 성도들은
순식간에 영이 변하여 몸이 되는데, 성경은 이를 가리켜 “신령한 몸”(고전 15:44)이라고 한다.
이처럼 예수의 부활은 변형되신 부활이고, 성도의 부활은 변화되는 부활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기도 (10)

기도와 응답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고 사모함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되 다음과 같은 모습이 필요하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줄 믿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한 것을 들으신 줄 믿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먼저 본을 보이신 것이다(요 11:41).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
바로 진실한 믿음이며,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태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응답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응답을 조건으로 감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에서 겸손의
표현으로 나와야 할 당연한 본분이다. 기도는 우리의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과 간구의 제목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능히 이루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로서 하나님께 맡겼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인해 감사해야한다. 그
감사를 기도로써 계속하라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기도는 봄에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기도에 대한 계속적인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응답받기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사용한 시간은 허비한 것이 아니라 풍성한 결실을 바라며 씨를 심는 것과 같다. 농부가
봄에 많은 일을 했을 때 가을에 많은 추수를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기도 응답을 받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바로 의심이다. 의심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고 하셨다(약
1:7). 또한 잉태한 여인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자신이 임신한 여자인 것을 의식하고 지내는 것처럼,
한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의 제목을 정하여 기도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잉태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한 것을 취소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그
응답을 보기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까지 믿음으로 참고 인내해야 한다.
응답 자체가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응답받은 후에 감사하고 증거해야 한다. 예수는 고침 받은 문둥병자에게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마 8:4) 명하셨다. 이는 곧 감사의 예물과 간증을 통해 증거를 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의며 신앙이다. 또 그분께 대한 우리의
진실한 봉사이기도 하다. 이것이 결여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진실이 결핍되고 관계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감사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우리 삶에 더욱 넘쳐나게
해야 한다.

기도 (9)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넷째, 복을 구하라. 기도는 성도의 권리요 주님의 약속이며 그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먼저
복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주신 신령한 것들 중에 제일 먼저 복을 주셨다. 이는
하나님이 신령한 것으로 피조물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복의 결과는 풍성함과
창대함이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모든 생물과 사람에게 복을 주셨고, 성일에도 복을 주셨다. 또한
아브라함과 언약으로써 복을 명하셨고,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뭇 영혼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 사람들의 소망은 모든 것이 풍성하고 창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먼저 복 주시는 이로부터 복을 받았을 때 오는 열매다.
 
이러한 복은 주인 되는 영감을 말한다. 복 있는 자는 소유할 수 있는 소유주가 되는 것이다. 복이 있는
자, 즉 주인 된 자는 자기의 산을 바다로 옮길 수도 있고, 자기의 뽕나무를 바다에 옮겨 심을 수도
있다. 자기의 것이기에 자기 임의로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인의 주권을 가진 자를 ‘믿음 있는 자’라
말한다. 믿음 있는 자와 복이 있는 자와 주인이 된 자란 같은 의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을
얻고, 해야 할 일을 하려면 먼저 복을 받아야 한다. 복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능력을 구하라. 우리가 사모하는 복 중에 가장 급한 것은 능력이다.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영들과의 영적 전쟁이다(엡 6:12). 그러므로 영적인 신령한 생활은 능력으로써 지킬 수 있다. 자신의
육신의 힘만으로는 거룩한 생활을지킬 수 없다.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써만 거룩한 생활을 지킬 수
있다. 누구든지 능력이 없으면 영적 생활에 승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따르는 권능으로 임하시는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행 1:8).
 
하나님의 능력은 마귀를 이기고 귀신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으로써 그 능력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한량없이 주신다. 능력을 감당하려 해도 역시 능력이 필요하다. 믿음만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다. 능력을 구하되 무시로 기도하고 더욱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기도는 수양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에게 있는 무한한 능력을 공급받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기도 (8)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둘째,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기도에는 먼저 구해야 할 우선순위가 있다. 인간은 먼저 육체로
인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고 구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6:33).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를 위해 지으신 곳이다(히 1:2~3). 이곳을 우편 하늘이라 하는데 지금
주 예수께서 들어가 계신다. 이는 예수께서 아버지 앞에 참으로 겸손하시고 순종하심으로 얻으신
영광이다. 그는 이 하나님의 나라에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을 초청하시려고 예비하는 중에 계시다(요
14:1-3). 우리의 소망은 모두가 이곳에 들어가는 것이요, 그곳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는 데 사람이 능히 할 수 없는 것은 주께서
보충하셨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셨다. 곧 속죄는 주께서 담당하시고 은혜로
주셨으나, 신앙생활은 각자가 담당해야 할 몫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소망하는 자는 그
나라에서 필요한 것과 그 나라를 위한 헌신과 사랑을 한데 모아야 한다. 그 나라는 소망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이는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는 삶이요, 주 예수와 뜻을 같이함이다(마 12:50). 곧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깨달아 순종하는 삶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자존심을 뜻한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바로
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의를 모르거나 이를 구하지 않으면 이는 불의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한다. 이는 기도의 법칙이다.
셋째, 간구하는 심령을 구하라. 기도는 응답을 구하는 끈질긴 신앙의 의지이다. 우리는 필요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간구한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간사하여 수시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여 기도의 성품과 내용을 지속하지 못하고 회의를
품거나 좌절하는 것은 기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처럼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은
영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간구하는 심령을 사모하고 구해야 한다(슥 12:10). 하나님으로부터
간구하는 심령을 받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의 제약 없이 마음속으로도 그침 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시면 피곤치 않고 마음과 성품이 변치
않는 간절한 믿음의 기도를 지속할 수 있다.

기도 (7)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넷째,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기도의 모본이다(눅
22:44).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히 5:7).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우리의 길이요, 모범이요, 진리이다. 그가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뿐 아니라 친히 보여 주신 기도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성령 또한 성도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심으로 그 본을 보이셨다(롬 8:26).
 
힘쓰고 애쓰고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은 많은 힘을 쏟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이다(잠 3:5).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위해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시다(대하 16:9).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은 인간의 수고 없이 선물로 얻은 것이지만 기도의 응답만큼은 해산하는 수고와
같은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이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만이 기도를 상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기도하는 인간의 고행을 요구하심이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께 집중하여
몸부림 칠 때만이 육신에 속한 자신의 모든 이론과 생각을 파하고 더 깊은 영적 세계와 진리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와 응답또한 영적 성장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첫째, 먼저 회개의 심령을 구하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은 바로
죄의 문제다. 죄 값은 사망으로(롬 6:23),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사 59:1~3).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벗기시고 거룩하게 하시려고 먼저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히 9:22). 이제 죽었던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생의 회개가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임의로 살려 했던 본질상 죄인임을 알고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중생의 회개를 통해 거듭난 자는 매일의 삶 가운데 범하는 본죄와 자범죄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한다.
이러한 회개는 단순한 죄의 고백이 아니고 세상과 죄를 사랑하는 마음을 끊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일의 기도
가운데는 회개의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마 6:12). 죄로부터의 거룩함이 없으면 결코 주를 뵐 수
없기 때문이다(히 12:14). 기도하는 자의 겸손함이란 주의 보혈을 의지하여 참 마음으로 회개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그렇게 회개하는 심령을 원하시고 찾으신다(시 51:17).

기도 (6)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이뤄지는 그분과의 인격적인 대화다. 대화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다음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주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그 약속 안에서만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또한 응답이기도 하며,
이 응답은 곧 그분의 약속이다. 약속된 것을 응답하시고, 응답은 반드시 약속에 의해서만 주시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요 응답이신 말씀이 내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의 담력을 가지게 된다.
셋째, 영으로 기도해야 한다. 기도 자체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므로
영적이다. 사람은 의지를 사용함으로써 기도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께
무엇이나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특별히 인간에게만 영을
부어주셔서 육신을 극복하고 영적으로 살 수 있게 하셨다. 이처럼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이 타락함으로서 영이 죽었다. 즉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또한
하나님께 영으로 호소할 능력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죽었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로 죄에서 벗어나 다시 살게 되었다(엡 2:4-5). 이처럼 영혼이 다시 산 증거는 예수께서
하늘로 가신 이후 그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그때로부터 하나님과 교통이 막혔던 영의 기도가 하나님께로 상달되는 영광을 보게 되었다. 곧
제자들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행 2:4).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은 그들의 영을 위해 기도할 수는 있었을지라도 영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유는 누리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과 사이가 막혀서
인간의 영은 기도할 수 없고 영혼이 스스로 탄식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주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또한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상달시키시고 계신다(롬
8:34). 또한 성령께서 임하셔서 방언을 말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한 영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고전 14:14-15). 이처럼 기도에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와 영으로 하는
기도가 있다(고전 14:15). 마음의 기도는 자신의 지식 범위 안에서 알고 있는 바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기 영이다(고전 2:11). 그러므로 영으로 기도함으로써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사정을 가장 정확하게 기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기도할 때(롬 8:27),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다(요일 5:14~15).

기도 (5)

기도의 주체
또한 기도하는 자가 거룩함이 없이는 그 기도가 상달되거나 응답받을 수 없다(히 12:14).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함이란 하나님 앞에 있는 그 삶과
생활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에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명령하셨다. 이와 같이 장소나 시간에 상관없이 신을 벗은 자처럼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거룩한 자극을 받으며 사는 자만이 그 기도를 상달시키고 응답받을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거룩한
성전으로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깨닫고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눅
19:46, 고전 3:16).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첫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요 16:24). 예수 이름은 기도의 열쇠와 같다. 하나님은 예수를
아는 자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다(마 16:19). 이는 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는 권세다.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고(요 5:43), 그 이름을 세상에 나타내신 분이시다(요 17:6).
그는 하늘로 가시기 전에 그 이름을 이 땅에 두셔서 그 이름으로 성도들이 보존되게 하시고(요
17:11),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며(요 1:12), 그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
주셨고(요 14:26), 그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아 승리하게 하셨다(막 16:17). 또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하셨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은 예수 이름에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이다. 믿음도 없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만 하면 상달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그의 이름에 두셨기 때문이다. 이
예수 이름은 오직 하나님만의 고유한 이름이기에 그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것이 된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하셨으니, 그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만이 기도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간구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입장과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 쉽지만, 기도는 그렇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약속이요,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요구만 드리려 하지 말고, 그가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그 명령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가 부탁하신 거룩한 약속을 잊으면 기도는 결코
상달되지 못한다.

기도 (4)

기도의 모본이신 예수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의 모본을 보이셨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으나 스스로 겸비하셔서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다(빌 2:6~8). 그의 공생애는
하나님으로서가 아닌 완전한 사람으로서의 삶이었다. 곧 예수도 우리와 같은 육체의 한계와 연약함을
갖고 계셨다(히 4:15). 기도는 육체로 인해 영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곧 기도는 육체로
인해 제한받는 영적인 생활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도 육체로 계실 때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늘의 신령한 능력을 덧입기 위해 범사에 기도하셨다. 예수의 공생애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요 17:4). 예수는 이를 위해 습관을 좇아 새벽 미명이나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막 1:35, 눅 6:12; 22:39). 예수께서 행하신 기도는 그의 겸비하심의 극치다.
예수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 14:28) 하시며 아버지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셨다. 또한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으셨다(히 5:7). 예수는 그의 공생애 동안 임의로 행하지 않으시고 기도로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이 성취되기를 간구하셨고, 마침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도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셨다(마 26:39~42).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을 때 응답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뜻을 겸손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지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몸소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셨고(마 6:9~13), 기도의 모델을
제시해 주셨다. 이제 예수의 제자 된 성도들은 예수께서 보이신 모범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겸손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주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그의 권리로 아버지께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미신적인
신념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확실한 신분을 알고 해야 한다. 우리의 육신은 세상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영은 죄로 인해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살았다. 곧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셨음으로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것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을 때는 그에게 구할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할 권리를 가진다.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불쌍해서 한두 번의 구제는 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계속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녀에
대해서는 평생의 책임을 느끼며 의무를 가진다.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종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구한 것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한 탄원이었지, 자녀 된 권리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된 자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양육을 받는 일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구하는 것은 구걸이 아니라 자녀의 권리다.

기도 (3)

기도의 온전하고도 선한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참 신앙에 있으며, 기도는
오직 모든 영광과 권세와 나라가 하나님께만 있음을 시인하고 복종하는 겸손한 신앙의 실상을 확증해
보여드리는 행위다. 그러므로 기도는 반드시 예수 이름으로만 해야 하는 법칙이 있다(빌 2:10).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주 예수는 곧 시행하시리라는 약속이
있다(요 14:13-14). 기도 없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이루지도 못할 것이다.
기도가 신기함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리고 온 세계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 아버지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이는 실상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있었던 이적들과 그 약속들이
오늘날에도 역사하며, 땅의 일에도 하늘나라에서 역사하는 신기한 조화를 우리는 믿는다. 성령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교회 안에 임하시고, 또 성도들에게 역사하신다. 마치 예수를 성령이
몰아내심 같이(막 1:12), 기도하는 자들에게, 기도하는 교회들 위에……. 기도는 영원한 약속이며
이적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먼저 흙으로 육체를 지으시고 그 속에
영을 부으셔서 영혼을 가진 특별한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도록
지음 받았다. 또한 인간은 육체의 다양한 한계로 인해 범사에 아쉬움이 많은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육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 수 있는 수단으로 기도를
허락하셨다. 곧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이요, 하늘 문을 여는 신령한 열쇠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기도를 명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창조자시다. 우리의 기도는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것처럼 지성
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상은 그들의 구하는 바를 들을 수 있는 귀나 응답해 줄 능력도 없거니와
아무런 약속이나 보장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친히
붙들고 계신 만유의 주가 되신다(히 1:3; 11:3). 그는 홀로 유일하신 자존자시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전능자시다(딤전 1:17; 6:15).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능히 어떠한 응답도 가능하신
분이시다. 삼위 하나님 가운데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다. 아버지만이 기도하지
않으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아들은 육체로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간구하셨고(히 5:7), 성령도 성도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신다(롬 8:26~27).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하시며 그에게 기도하신다.